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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내만세운동
머내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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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내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9일 고기리와 동천리 주민 400여 명이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 자주민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일어선 시민혁명이었습니다. 이 날 머내의 선대 주민들은 수지면사무소를 거쳐 용인의 중심지 구성(지금의 언남동)까지 10km가 넘는 거리를 걷거나 뛰면서 "대한독립 만세"를 목놓아 외쳤습니다. 시위대는 그 사이에 1500명 규모로 늘어났고, 만세운동의 위세에 놀란 일본 헌병대는 마침내 발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안종각, 최우돌 두 애국지사가 안타깝게도 현장에서 절명했습니다.

머내만세운동 100주년이던 2019년, 주민들이 일제강점기 수지면의 <범죄인명부>를 발굴해냈고, 이를 근거로 당시 주도자 및 적극 참가자 15명이 대통령표창을 받았습니다. 2019년에는 용인시 협조로 시위행렬이 출발했던 고기초등학교 앞에 '머내만세운동 발상지' 표지석이 세워져 100주년의 의미를 더욱 각별하게 했습니다. 동천동 주민자치위원회와 동천마을네트워크는 2020년 공동으로 머내 애국지사들의 각종 터전에 기념표지판을 설치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1차년도의 작업 결과 5곳의 터전에 모두 11명의 애국지사들을 기념하는 표지판이 설치되었습니다. 5곳의 역사적 장소를 아래 영상에서 확인해보세요.

1. 고기초등학교 앞 발상지

• 현재 고기초등학교 운동장 및 정문 앞 ‘머내만세운동 발상지’ 표지석이 서 있는 장소는 1919년 3월 29일 머내만세운동이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다.

• 만세운동 당시는 고기초등학교가 설립되기 전이었고, 이곳은 고기리 마을 입구의 공터였다.

• 이곳에서 오전 9시경 고기리 주민 100여 명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 행진을 시작해 동천동 방향으로 나아갔다.

• 이 역사적인 만세운동을 기념해 그 100주년인 2019년 머내 주민들은 용인시의 협조를 얻어 이곳에 ‘머내만세운동 발상지’ 표지석을 세웠다.



2. 홍재택 애국지사 살던 곳

• 고기동 128번지는 머내만세운동 애국지사들 중의 한 분인 홍재택 선생이 살던 곳으로서 기념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 무인 집안 출신인 홍재택 선생은 안종각, 이덕균 선생 등과 함께 머내만세운동 기획자의 한 분이다. 홍 선생은 주로 대외연락 업무를 맡아 낙생, 구성 등 인근 지역으로 다니며 시위계획을 사전에 조율하고 역할을 분담했다.

• 그는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헌병의 집중적인 감시 및 탄압 대상이었다.



3. 낙생저수지 둑

• 낙생저수지는 1961년 준공되었으므로 1919년 머내만세운동 때는 없었다. 만세운동 당시 시위대는 저수지 바닥 위치의 물길 좌우로 난 소로를 따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동천동으로 내려갔다.

• 낙생저수지의 둑은 성남시 분당구 동원동과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및 동천동의 경계점에 해당한다.

• 낙생저수지 둑은 2018년 머내만세운동 99주년 행사 때부터 대형 태극기를 펼쳐놓고 기념촬영 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고, 머내 커뮤니티 댄스팀의 기념공연도 바로 이곳에서 열렸다.

• 현재 낙생저수지는 고기동의 생태 및 주거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주민운동의 상징적인 장소들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4. 동막골 장승 서 있던 장소

• 동광교회 앞 화단은 1970년대까지 동막골 입구의 장승 ‘천하대장군’이 서 있던 장소다. 또 하나의 장승 ‘지하여장군’은 동막천 건너에서 이곳을 마주보며 서 있었다. 그곳은 광주 동막골이라고 불렸다.

• 매년 음력 10월에는 동막천 양쪽의 동막골이 합동으로 이 장승들 주위에서 상달 행사를 열어 이듬해의 풍년과 무병장수를 빌었고, 소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 이곳에 있던 장승은 도로를 확장하면서 철거되었다.

• 100여 년 전 머내만세운동 때 고기동을 출발한 만세 행렬은 이 장승을 지나치면서 비로소 동천동의 첫 자연부락인 동막골로 접어들었다.



5. 오룡뜰

• ‘오룡뜰’은 다섯 마리의 용이 사는 들판이라는 뜻이다. 동막천 천변도로를 걷다 보면 중간에 동막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둑(보, 洑)을 만나게 된다. 그 위쪽에 물이 너르게 고인 곳과 그 주변이 바로 오룡뜰이고, 이 곳 물은 주변지역의 농업용수로 아주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 이곳에는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의 인조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던 충청도 관찰사 정세규의 부대가 몰사한 장소들 중의 하나라는 구전도 있다. 당시 험천전투의 주된 전투 장소는 고개 넘어 보바스병원 근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 이곳의 작은 둑은 낙생저수지에서 내려온 수로가 동원동 쪽으로 건너가는 물길 역할도 했다. 지금도 맞은편 천변에 수로를 열고 닫을 수 있는 조절장치가 남아 있다. 이 둑을 동천동 쪽으로 연장하면 자이아파트 쪽으로 나가는 골목길과 일치한다. 이 골목길도 과거 수로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둑은 손곡천의 수로교와 함께 머내 지역이 과거 논농사 지역이었음을 증언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 동막천 건너의 들판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동천동 지역의 야유회 장소로 곧잘 이용되던 곳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여기서 개 잡아 먹지 마시오”라는 간판이 남아 있다.



2022년 3월, 머내만세운동을 기념하고 체험해보는 활동이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됩니다. 아래 이미지에서 일정과 장소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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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 용인시 수지구 고기로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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